역사이야기

신석기 문화 이야기 다섯 번째

☆★☆★☆★. 2020. 8. 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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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이야기 어느덧 다섯 번째가 되었는데요 마지막 마무리만 남았어요. 대단원에 마무리 오늘은 황하 신석기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황하 신석기 문화 분포

기원전 5천 년대의 황하 신석기 문화 분포를 나타낸 그림이에요.

 

반포 문화 - 붉은색
1. 강채(姜寨, Jiangzhai), 2. 원군묘(元君廟, Yuanjunmiao), 3. 횡진(橫陳, Hengzhen), 4. 사가촌 (史家村, Shijiacun), 5. 하맹촌 (下孟村, Xiamengcun), 6. 북수령 (北首岭, Beishouling), 7. 여가애 (呂家崖, Lujiaya), 8. 용강사 (龍崗寺, Longgangsi), 9. 서산평 (西山坪, Xishanping), 10. 관지 (官地, Guandi), 11. 동자애 (童子崖, Tongziya)

 

후강 1단계 - 녹색
1. 안양 (安陽, Anyang), 2. 남양장 (南楊莊, Nanyangzhuang), 3. 단영 (段營, Duanying), 4. 석북구 (石北口, Shibeikou), 5. 아선 (阿善, Ashan), 6. 석호산 (石虎山, Shihushan)

 

북신 문화 - 주황색
1. 북신 (北辛, Beixin), 2. 서상원 (西桑園, Xisangyuan), 3. 동가백 (東賈柏, Dongjiabai), 4. 대문구 (大汶口, Dawenkou), 5. 대이산 (大伊山), 6. 백석촌 (白石村, Baishicun)

 

서쪽의 반포 문화는 전 시기 라오관타이 문화를 기원으로, 후강 1단계와 북신 문화는 배이강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하였어요. 북신 문화는 전 시기 재지 후리 문화의 영향도 받았죠. 섬서성의 라오관타이 문화가 배이강 문화 지역으로 미친 확장 압력이 연쇄적으로 배이강 문화가 산동지방으로 확산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었다고 해요.

 

채색토기 시기로도 불리는 양샤오 문화의 직전단계이나 아직 채도의 비율은 미미하였어요.

 

묘저구 문화

1. 천호촌(泉戶村, Quanhucun), 2. 서관보(西關堡, Xiguanbao), 3. 강채(姜寨, Jiangzhai), 4. 안판 (案板, Anban), 5. 복림보 (福臨堡, Fulinbao), 6. 왕가취 (王家嘴, Wangjiazui), 7. 서파 (西坡, Xipo), 8. 동장촌 (東莊村, Dongzhuangcun), 서왕촌 (西王村, Xiwangcun), 9. 서음촌 (西陰村, Xiyincun), 10. 북양평 (北陽平, Beiyangping)

 

주요 특징

위 그림의 녹색 점선은 관중 subtype, 보라색 점선은 남부 산서성 subtype, 다홍색 점선은 서부 하남성 subtype 을 나타내니 한번 잘 살펴보시고 아래 설명들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강을 따라 퇴적되어 있는 황토층을 파 내어 만든 반지하식 수혈에 거주하였어요.
조, 기장, 벼, 콩을 재배한 것으로 보임. 주식은 조와 기장 (~80%). 돼지는 전적으로 조와 기장을 먹인 것으로 보이고요.(~100%)
개는 거의 사육되지 않았어요. 또한 사냥 흔적도 매우 제한인 것으로 나타나요.
주거지나 매장지에서 사회 계급 분화의 모습이 나타났어요. (반포 문화부터 경향성이 시작). 상위 계급이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하였던 흔적이 남아있어요. 사치품으로 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시기예요.
동시대 다른 신석기 문화(요하, 양자강 하류, 황하 하류) 지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취락지의 크기는 더 크고, 넓은 공용 공간이 존재하며, 높은 위계의 무덤에서 사치품이 별로 나오지는 않았어요.
황하 하류 대문구 문화와 활발한 교역이 발달하였다는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났어요.

양샤오 시기 후기에 붉은 화살표 방향의 주변부로 문화가 확산했어요. 주변부는 취락지의 복잡도가 증가하나 중심부는 오히려 취락지의 크기, 복잡도가 감소하였던 것이 특징이에요.

 

 

대문구 문화 특징

 

조, 기장, 벼 재배. 이 지역도 역시 조와 기장이 주식이었어요.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벼 재배 비중이 상승하였고 상위 계급이 쌀을 먹고 하위 계급은 조와 기장을 소비하는 패턴이 나타났어요.
돼지, 개, 소, 닭을 사육하였어요. 이 지역도 주로 돼지를 사육한 것으로 보여요.
대문구 문화에서 돼지는 주술적/종교적으로도 중요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돼지를 무덤에 부장함은 물론 돼지 형태의 도자기를 제작한 흔적들이 남아있어요.
해산물 소비는 후대로 갈수록 점차 줄어들었어요. 특히 패총이 거의 사라졌어요.
고령토로 토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어요. 물레가 사용되면서 일정한 품질의 토기제작이 가능해졌고 토기 제작 전문 장인 집단이 등장하였어요.
계층 분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거주지의 크기에서도 계층이 나뉜 흔적들이 나타났어요.
황하 중류, 양자강 중/하류, 요동반도의 문화권과 원거리 교역이 이루어졌어요.
발치 풍습과 함께 공 모양의 작은 돌이나 토기를 입에 물고 있었던 정황이 보여요. 성인 여성들에게서 대부분 나타나지만 남자나 아이에게서도 간혹 나타났어요.
이미 묻었던 시신을 나중에 꺼내어 다시 매장하는 2 차장이 나타났어요. 같은 성별끼리 모아서 수십구를 한 번에 묻는 경우와 꼭 남녀 한쌍을 묻는 경우가 같이 발견되었는데 이 남녀 한 쌍을 묻는 행위에 대해서는 부부를 묻은 것이라는 의견과 부부를 묻긴 했는데 남자가 죽으면 여자를 생매장한 것이라는 의견, 여종을 순장시킨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요.
고라니의 송곳니를 부적처럼 손에 쥐어줬던 흔적이 나타났어요.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어요.
동 시기 양자강 중류의 Shijiahe culture, 하류의 Lianzhu culture와 함께 그림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문양이나 상징으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후대의 갑골문 문자와 유사한 형태들이 나타났어요.

 

마치며

이것으로 신석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섯 개의 포스팅을 통해서 이야기해 보았는데 어떠셨나요?

 

고대 신석기 문화에 대한 유물들은 종종 발견되고 아직도 남아있지만 물건이나 형태들을 보고 그 시대의 생활상을 추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어요. 비교적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정설로 표현되고 있지만 모두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기술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서 언제든지 새로운 해설이 나타날 수 있기에 후대의 사람들이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고 연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앞에서 포스팅했던 신석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도 개인적인 견해가 다소 섞여있지만 그냥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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