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로마 역사 이야기

☆★☆★☆★. 2020. 8. 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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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게 서양사가 아닌가 생각해요. 역사들은 돌고 돌아 서로 엮여있어서 파고들다 보면 껴맞추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동안 너무 고대 아시아 이야기만 했던 거 같아서 서양사의 기본이 되는 로마 역사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로마 콜로세움 -  출처 픽사베이

 

로마 역사 이야기

처음 시작은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가 나라를 세웠고, 대제국 로마의 시작이었죠.

그 후 509년까지 로물루스, 누마 폼필리우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안쿠스 마르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세르비우스, 타르퀴니우스 스페르 부스 이렇게 7명의 왕들이 다스렸어요. 그러나 타르퀴니우스 스페르 부스가 폭정을 하고 여러 좋은 일이 있어서 시민들이 일어났어요.


그 시민들은 왕을 내쫓고 공화정을 세웠어요.
그 공화정은 원로원, 민회, 집정관 이렇게 여러 파트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처음의 로마 공화정은 귀족 위주인 원로원, 집정관 위주로 돌아갔어요.


그러자 평민들은 자신들에게의 권리가 필요하다며 기원전 494년, 성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로마의 평민들은 병사였거든요. 마침 이 시기에 볼스키족이 쳐들어 왔고 원로원은 하는수 없이 평민들의 권리를 높여주고 싸우게 하였어요. 


이 시기에 평민들이 얻은것은 호민관이에요. 호민관은 신성불가침의 존재, 원로원에 대한 거부권, 민회 소집 등 막강한 힘을 가졌던 기관이에요.


그리고 한 100년 뒤, 북쪽의 갈리아족이 내려오게 되고 로마를 점령하였죠. 
이것은 기원전 390년의 일로 이후 로마는 로마제국 멸망 때까지 로마의 주인이 바뀌지 않았어요. 영토를 계속 불려 나갔을 뿐이었죠.


그 후에는 에피루스의 피로스 왕에게 이긴 것 같은 패배를 하고 난 후 이탈리아를 정복하게 돼요. 기원전 280년의 일이에요. 

 
그 후 로마는 시칠리아를 얻고 싶었고 구실이 발생하자 전쟁을 일으켰고 그곳에서 카르타고와 부딪혀 싸우게 돼요.

 

이 전쟁의 이름은 1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가 승리하였어요.

이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에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내게 돼요.


이때,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카르타고의 영토에 이베리아 반도의 남동쪽을 넣고 사군툼이라는 로마 동맹 시를 공격했어요. 
2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죠.


이때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를 통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또다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해요.
한니발은 자신이 그렇게 한다면 이탈리아의 로마의 동맹국이 로마를 배반하고 자신에게 붙을 줄 알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어느 정도의 동맹국들은 한니발에게 붙었거든요.

 

그러나 결코 한니발이 생각한 만큼의 수는 아니었어요.
그러던 중, 로마에서는 지연작전을 쓰던 파비우스 대신 다른 사람인 바로를 내보내게 돼요. 이 사람과 한니발은 칸나이라는 곳에서 맞붙게 되었고 이 전투에서 로마는 대패를 하였어요.


그 후 스키피오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되요.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있는 사이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할 생각을 하였고 결국 카르타고 정부는 한니발을 불러들이게 되요.


그리고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자마라는 곳에서 맞붙었고 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지고 스키피오가 이겼어요.
스키피오는 이 전투로 인해 아프리카누스라는 칭호를 받았죠. 그리고 카르타고는 로마의 허락 없이는 군사 행동을 할 수가 없게 돼요.


그러다 어느 날 대(大) 카토가 카르타고에 방문했어요. 그리고 그곳이 다시 번영할 것 같자 카토는 로마로 와 계속 카르타고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러던 중 누미디아가 카르타고를 침범했어요. 그러나 카르타고는 로마의 허락 없이는 군사행동을 못해서 로마에 허락을 용청하죠. 그러나 로마는 그것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카르타고는 허락 없이 군사를 움직여요.


그러자 로마는 그 구실로 카르타고를 공격했고 카르타고는 그로부터 3년 후 완전히 망해버렸어요.


그 후 로마는 그리스도 정복했고 땅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돼요. 땅이 늘어나자 부유한 귀족들의 땅도 늘어났고 라티푼디움 같은 대농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이로 인해 시민 간의 부의 양극화는 심각해지는 결과를 나타내었죠. 


이것을 본 그라쿠스 형제는 이것을 고치기 위해 여러 개혁안을 내놨지만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암살당하고 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정적들에게 쫓기다 자살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 혼란기에 술라와 마리우스 같은 군사 장군들이 나타나 권력을 잡기 시작했죠.


마리우스와 술라는 서로 다투었고 마리우스가 먼저 죽었고 그 후 칸나가 마리우스를 이어 술라와 싸우게 돼요. 그러다 신나는 부하들에 의해 죽고 술라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살아남았어요.


그 후 술라는 로마 최초의 종식 독재관이 되었죠. 그러나 술라는 자신의 권력을 기원전 80년에 반납하고 기원전 78년에 짧은 권력을 맛보고 죽게 되어요. 그 후 로마에는 혼란이 찾아오지만,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등등의 장수들이 나 타자 혼란을 잠재웠어요.


그리고 그들끼리 다툼을 하기 시작하고 카이사르라는 사람이 등장하였어요. 그렇게 3명이서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했고 그 후 카이사르는 갈리아로 가게 되고 갈리아를 정복하였어요. 그러던 중 크라수스는 파르티아 원정에서 죽게 되었죠.

그러자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는 싸우게 되고 결국 카이사르가 이겼고 로마의 두 번째 종신 독재관이 되었어요. 그러나 카이사르는 공화파들에게 로마의 왕이 될 거라는 의심을 받게 되고 브루투스, 카시우스와 같은 공화파들에게 암살당해 죽고 말아요. 

 

그 후 카이사르의 장수였던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그들을 물리치게 돼요. 그리고 그들은 레피두스와 함께 또 동맹을 맺고, 싸우기도 하였죠. 이것이 로마의 제2차 삼두정치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러다가 레피두스는 어느샌가 밀려나고 나머지 두 명이 싸우는 구도가 펼쳐져요.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을 나누다가 로마 시민들의 미움을 받고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와 그리스 악티움이라는 곳에서 해전으로 맞붙게 되었죠.


그러나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은 지고 말고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였어요.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고 사실상 황제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름을 알리는 로마의 유명한 황제 중 하나로 남았죠. 기원전 27년 시기의 일이에요.


이후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를 세웠어요. 티베리우스, 가이우스(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그 황조에 속해 있었죠. 그리고 네로가 암살당하자 로마에는 혼란이 찾아오게 돼요. 네로 황제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각색되어 알려진 만큼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 혼란기를 4 황제의 해라고 부르고 이것은 기원후 69년의 일이죠. 이 4 황제에는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있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이 혼란기를 수습하였어요. 그리고 그는 새 황조를 세웠고 이 황조는 플라비우스 황조라고 불려요.


이 황조에는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있었고 도미티아누스가 원로원에게 밉보이고 다키아 원정을 실패하여 결국 암살당하여 생을 마감했어요. 


그 후 황제가 된 사람은 네르바라는 사람으로 오현제 시대를 연 사람이에요. 그 후 정복 황제인 트라야 누스, 순방 황제 하드리아누스, 자비롭다는 뜻의 안토니누스 피우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차례대로 황제가 되고 이 시대가 로마의 최고 전성기였다고 평가되던 시기예요. 

이 시기를 지나고 로마에는 혼란이 찾아오게 되죠. 세베루스 셉티미우스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잠깐 이 혼란기를 안정시켰지만 이 황조가 끝이 나고 심각한 혼란기가 다시 찾아왔죠. 이 혼란기에는 로마의 황제가 수시로 바뀌고 그런 시기였어요.


3세기의 위기, 즉 군인 황제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였어요. 이 시기에는 게르만족들이 쳐들어 왔고, 로마에서 갈리아가 나갔고 팔미라가 나갔어요. 갈리아는 갈리아 제국이 되었고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시 로마에 흡수되었어요. 팔미라도 마찬가지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시 로마로 흡수되었죠.


그 후 기원후 284년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나타나 이 혼란기를 종식시켰어요. 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황제를 4명으로 늘리는 특이한 행보를 보여줬어요. 그러나 곧 황제들끼리의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황제가 6명까지 늘어나게 됩니다만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2 황제가 되었죠. 


이 사람들은 기독교를 인정해주는 밀라노 칙령을 기원후 313년에 발표한 황제들이에요. 그리고 그 후 콘스탄티누스가 리키니우스를 물리치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어요. 그리고 그 후 황제는 다시 2명이 되었죠. 한쪽은 서쪽, 나머지 한쪽은 동쪽을 맡아서 다스렸어요. 그리고 테오도시우스라는 사람이 나타나 다시 잠깐 통합시켰죠. 그리고 그의 업적 중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지정한 것이에요. 이 테오도시우스는 395년에 죽는데 이것 이후, 로마는 영원히 분단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이후 테오도시우스 이후 어린 황제들이 서로마를 다스리게 되고 게르만족들은 계속 들어왔죠. 그러다가 훈제 국의 아틸라로 인해 게르만족이 쏟아져 들어오고 스틸리 코라는 게르만족 장수가 서로마를 부흥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결국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의 장군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되죠. 기원후 476년 시기의 이야기예요.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476년까지, 왕정시대부터 공화정, 원수정, 전제정 시대를 아우르는 근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제국은 서양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가 없죠. 로마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이유이기도 해요.

 

계급과 정치, 법, 군사, 종교 등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많은 기준들을 만든 로마 제국은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발달되었고 오늘날 영화로도 많이 소개가 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조금 더 관심 있게 찾아본다면 재밌는 사실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로마 역사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매력 있는 분야가 아닌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