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한 충렬왕과 그 아들 충선왕 이야기

☆★☆★☆★. 2020. 8. 16. 08:10
반응형

충렬왕은 누구인가요?

 

충렬왕(1274년~1298년, 1298년~1308년)은 원나라의 황실과 처음으로 결혼한 고려왕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고려에는 원간섭기라는 암흑기가 있었는 데 이 때 원나라가 고려를 아주 수치스럽게 이용했다. 고려의 왕들을 전부 몽골에 들여보내서 강제로 몽골의 문화와 지식을 습득시키고 그들의 정체성을 몽골인으로 바꾸려고 했고 고려에 몽골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고려왕들을 강제로 몽골의 공주들과 혼인시켰다.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었고 시다바리에 불과했다.

 

그 수치스러운 혼인을 했던 고려 최초의 왕이 바로 충렬왕이다.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을 했다. 그 때 충렬왕의 나이는 마흔이 다 되었다고 한다.

사실 충렬왕은 이 번이 첫 결혼이 아니었다. 이미 정화궁주와 혼인하여 애까지 딸린 유부남이었다; 그런데 당시 그의 두번째 와이프 제국대장공주는 상당히 어린 나이였다고...한다...

제국대장공주와 충렬왕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는 데.. 그 아들은 충선왕이었다.

 

호복과 변발로 입국

 

1274년, 원종이 죽자 충렬왕은 고려에 돌아와서 즉위했다. 귀국할 때 충렬왕은 변발에 호복차림을 하고 고려로 왔다. 원나라에 있던 충렬왕이 귀국하자 많은 백성들이 그리웠다며 기뻐서 소리질렀지만 그가 충렬왕인지 못알아볼정도로 충렬왕은 변발에 호복차림이었다.. 상당히 우스운 꼴이었다.

 

우리의 충렬왕이 저렇게 되다니.. 슬프도다

 

거리에서는 왕의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하다가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ㅋㅋ

 

아버지를 못마땅해했던 충선왕

 

충렬왕은 좀 문제가 많았던 왕이었다고 한다.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일본원정을 하려고 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 탐라총관부를 수복하여 영토도 회복하고 참하관 교육을 위해 경사교수도감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그는 여자를 너무 밝혀서 제국대장공주 몰래 다른 여자랑 노닥거리다가 걸린적도 있었고 술을 너무 좋아하여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도 안쓰고 그저 유흥만 즐기고 있었다.

 

백성은 일본원정으로 피폐해지고 힘들어지고 있었는 데 충렬왕은 시도때도 없이 큰 돈을 들여 사냥과 연회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충선왕은 이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1297년.. 갑작스럽게 어머니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였다. 그 이유는 남편이 바람피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ㅠㅠㅠㅠ 너무나도 슬펐던 충선왕은 충렬왕의 내연녀였던 무비를 잡아서 죽여버렸다. 충렬왕은 폐위되었고.. 그리고 충선왕은 1298년 즉시 즉위했다.

 

충선왕의 개혁(1298년)

 

충선왕은 왕위에 오른 후 인사제도부터 다 뜯어고쳤다. 새로운 권력기구로 사림원을 키웠고 권문세족들의 대토지 소유 문제와 양민착취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고려의 옛 제도를 복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충선왕은 너무도 시대를 앞서간 천재임에 분명했다. 그는 똑똑했지만 그 당시 국민성이 따라주지 못했다.

결국 실패했다. 충선왕도 원나라의 공주,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했지만 그 역시도 다른 여자들을 많이 거느렸다고 한다...; 피는 못 속이는건가 당신.. 당신의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좀 생각해줘라.... 대체 너마저도 왜그랬느냐...

 

 

조비무고사건

충선왕은 여러 부인들 가운데 조비를 가장 사랑했다. 조비가 그렇게나 예뻤다나.. 그러자 왕실에서는 조비가 충선왕이 계국대장공주를 사랑하지 못하게 일부러 음모를 꾸며서 여우짓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니 이건 대체 누가 만든거지...; 궁궐문에는 조비의 아버지 조인규의 와이프가 무당을 시켜서 충선왕이 계국대장공주를 사랑하지 않도록 저주했다는 글이 써있기도 했다.

화가 난 계국대장공주는 조인규와 그의 와이프, 조비를 잡아두고 몽골에 이 사실을 알렸다.

1298년 5월, 원나라에서 온 사신은 조비를 원나라로 보냈고 조인규의 재산을 몰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선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해 8월.. 충선왕은 왕위에 오른지 불과 7개월만에 폐위당하고 충렬왕이 다시 복위되었다. 이 사건을 조비무고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는 고려의 임금인가?

 

그는 한국인 최초의 혼혈왕이다. 몽골인과 고려인의 피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곳이 몽골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몽골인이라는 것을 만족했다. 그가 정방을 폐지하고 사림원을 만들어서 개혁을 추진했으나 이것은 반원자주정책이 아닌 그저 충선왕 자체로의 개혁시도였기에.. 원나라를 반대하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도 충렬왕을 싫어하고 비판했으나 결국 본인도 여자들을 만나는 것을 즐겼으며 원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는 만권당을 설치하여 서적을 모아서 이제현과 조맹부와 같은 학자들을 불러모아 고전연구를 하게 했고 학문연구를 했다.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였고 의염창을 설치하여 소금전매제도를 통해 국가재정을 회복하려했으나 권문세족들의 소금독과점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어이없게도 그는 몽골에서 고려의 정치를 했고 몽골에서 체류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고려 백성들에게 떠안겼기 때문에 결국 국가재정이 심하게 고갈되었고 고려가 그를 위해 희생하였다. 그는 고려의 임금이 아니다. 참 나쁜 사람..

그는 그가 그랬던것처럼 자기 아들을 믿지 못했다고 하는 데.. 그의 아들은 충숙왕(1313년~1330년, 1332년~1339년)이었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씨의 무신정권 이야기  (0) 2020.08.17
조선 4대사화 이야기  (0) 2020.08.16
나제동맹 이야기  (0) 2020.08.15
로마 베스타 무녀 이야기  (0) 2020.08.15
좌장군 순체 이야기  (0)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