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징기스칸 몽골 제국의 초대 황제 이야기

☆★☆★☆★. 2020. 7. 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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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즈칸은 1162년 몽골과 시베리아의 국경 근처에서 보르지긴 씨족 에수게이와 올크누트 부족 후엘룬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징기스칸은 몽골 제국을 세운 위대한 황제였어요. 그의 기병대는 불과 25년 만에 엄청나게 큰 영토와 인구를 정복했죠. 징기스칸은 그의 침략의 대상이었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악마로 불렸다고 해요. 하지만 그의 나라인 몽골과 중앙아시아에서는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하네요.

징기스칸의 어린 시절

징기스칸이 어렸을 때 몽골은 침략과 전투 약탈 납치 등이 일상생활이던 시기였어요.

징기스칸의 아버지는 징기스칸의 엄마를 납치해왔었고 그전부인의 아들을 혼인시키고 돌아오는길에 독살을 당해 죽었어요. 여자와 아이들만 남겨진 징기스칸의 가족은 사냥과 채집으로 겨우겨우 삶을 연명했어요.

 

징기스칸의 어릴 적 이름인 테무진은 16세에 부르테와 결혼하고 몽골 중부의 강한 군주인 옹 칸에게 복종하여 힘을 길렀죠. 

 

그러나 평화로운 날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주변 부족에서 테무진의 아내를 납치해 갔어요. 테무진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습격과 전쟁을 치렀고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나갔어요.

 

27세에 칸의 칭호를 차지한 테무진은 원정으로 나선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입지를 굳혀나갔어요. 35세에 새로운 근거지를 잡아 훗날 몽골의 수도 아 바르가가 되는 터를 닦기 시작했어요. 그 후 계속되는 전쟁을 거쳐 몽골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부족을 결합하여 몸집을 키웠어요.

 

징기스칸 몽골을 통일하다

1190년 테무진이 28살 정도 되었을 때 자무카가 그의 캠프를 습격했어요. 자무카는 테무진의 부족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약탈을 하였어요. 이 과정에서 그의 부족들은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테무진 또한 이런 몽골의 문화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였어요. 이때부터 테무진은 그의 부족민들을 서로 동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테무진이 39살이 되었을 때에는 쳐들어온 자무카와 옹칸에게 맞서 싸우면서 큰 상처를 입었지만 상대 전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부족을 지켜냈어요. 그 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테무진이 43세가 되었을때 많은 몽골의 부족을 모두 제압하고 마침내 몽골의 통일을 이뤄냈어요. 말 그대로 살육과 전쟁으로 이루어낸 통일이었죠.

 

영토의 확장 계속되는 전쟁

징기스칸이 48세가 되던 해에는 금나라의 사신이 징기스칸에게 찾아왔어요. 복종을 강요하였지만 그는 가볍게 무시하고 전쟁 선포를 해버렸죠. 다음 해 전쟁을 시작한 그는 4년 만에 금나라의 수도를 정복하고 항복을 받아냈어요. 지금의 중국 베이징이었죠.

 

지금도 이어지는 몽골의 기마민족답게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던 몽골의 군대는 적을 전광석화처럼 휘몰아치고 잔인하기로 유명하였어요. 보급물자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식량조차 구할 수 없었죠. 점령한 곳에서 약탈을 통해 식량을 보급하고 잘 정비되어 있던 군 체계는 몽골군을 세계 최강의 군대로 자리 잡게 만들었죠.

 

막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빠르게 확장하고 나서는 교역과 상업에 눈을 돌려서 영토를 안정시키기 시작했어요. 주변의 강력한 국가인 호레즘과 대규모 교역을 협상하였고 체결되어 대규모 상단을 꾸렸으나 호레즘의 한 지역 총독이 중간에 상인들을 죽이고 물건을 모두 빼았았어요. 

 

징기스칸은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호라즘의 왕인 무함마드 2세는 사신마져 죽이는 만행을 저지럿고 이에 분노한 징기스칸은 또다시 전쟁을 준비했어요. 중국을 먹어치운 전쟁의 중심에 있던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서 호레즘을 순식간에 정복해 버렸어요. 호레즘은 지금의 카자흐스탄 부근의 옛 강력한 국가였죠.

 

징기스칸의 마지막

징기스칸이 61세 되던 해에 그의 아들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어요.

네 아들이 있었고 그중에 세 번째 아들 오고데이가 후계자가 되었고 동아시아를 점령하여 오늘날 중국의 시초가 되었어요. 다른 아들은 몽골과 러시아와 동유럽을 나눠가졌다고 알려져 있어요.

 

아들들과의 왕위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하였지만 징기스칸은 정복전쟁을 멈추지 않았어요. 인도 북부를 점령하고 중국 송나라의 영토를 가로지르려고 했지만 더위와 습기 등 겪어보지 못했던 환경에 부딪혔어요. 이에 방향을 돌려 탕구트를 공격하기 위해 고비 사막을 건너던 중 사냥을 하다가 달려온 야생 마떼와 마주쳐 말에서 떨어지게 되고 크게 다쳤다고 해요. 하지만 기수를 돌리지 않았고 전쟁을 강행하였지만 탕구르의 수도를 함락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낫다고 해요. 

 

징기스칸이 남기고 간 유산

평생을 전쟁을 했던 징기스칸은 몽골의 대초원에서 영원히 잠들었어요.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들과 손자들은 계속되는 전쟁을 통해 몽골제국을 넓혀갔어요. 1279년 중국의 송나라를 물리치고 몽골 원나라를 세웠고, 1368년까지 중국 전체를 통치했어요.

 

징기스칸은 몽골의 많은것들을 바꿔 놓았어요. 대표적으로 출신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이나 용기가 있다면 장군이 될수도 있는 구조로 만들어 놓았어요. 가족등 혈연관계보다 평생을 함께했던 부하들을 더욱 믿었던 징기스칸 덕분에 부하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훗날 왕권을 계승하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했었어요.

 

여자들이 물건처럼 취급되고 납치와 약탈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였지만 징기스칸은 이를 금지하였고 남의 여자를 빼앗는 행위는 없어졌다고 해요.

 

또한 종교를 권장하고 자유를 보장했어요. 여러 종교를 인정하고 종교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여 인정받게 함으로써 여러 종교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평가받고 있어요.

 

오늘날 아시아 지역이라 불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징기스칸이라는 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렀지만 과연 이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잘게 쪼개진 부족사회에서 국가로 발전하는 시간은 많이 길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여러 나라로 쪼개졌지만 그 시절 징기스칸이 이뤄낸 위대한 업적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에요. 변하지 않는 과거의 역사이고 생전 그의 말처럼 그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은 그의 위대한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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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칭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이 세계를 흔들자 술탄들이 쓰러졌다. 칼리파들이 넘어졌고, 카이사르들은 왕좌에서 떨었다. 그는 천수를 누리고 영광이 최고에 이른 상태에서 죽었으며, 마지막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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